콘텐츠로 건너뛰기

[전정환]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1기를 마치며 - 전주의 창의적인 변화를 위한 엔진

왜 전주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했나

 2024년 10월 현재 서울의 인사동은 한국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전 세계인들로 가득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변화다. 1990년대에 활기찼던 인사동은 2000년대 들어 쇠퇴하고 있었고, 획일적인 전통 문화 콘텐츠와 소상공인 상권은 더 이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20년대 K-콘텐츠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서울의 원도심은 크게 활기를 띄고 있다.

[사진] 2024년 10월의 서울 인사동 거리

그렇다면 서울이 아닌 비수도권 지역에도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우리는 그 답을 전주에서 찾고자 한다. 전주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 중 하나로,  이를 지켜온 사람들과 프로그램들이 있다. 한옥마을, 전주세계소리축제, 전주국제영화제 등은 2000년대 이후 전주의 지속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전주는 산업화 시대에 지역 개발에서 소외됐지만, 이제 선진국 한국의 시대에 전주 원도심은 '글로컬' 콘텐츠의 보고가 될 잠재력이 있다. 다시 말해, 세계와 로컬이 융합되고 창조성이 발현되는 '크리에이티브 타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한옥마을은 훌륭한 전통 문화 상권으로 자리 잡았고, 2023년에는 1,500만 명의 여행객이 찾았지만, 대부분 당일치기나 1박 여행에 그친다. 한옥마을 외에도 전주 원도심에는 영화, 소리, 음식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있지만, 이들은 각각 분절되어 있다. 전주의 원도심은 고유하고 진정성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지니고 있지만,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민과 방문객, 전통 장인과 크리에이터, 다양한 문화 콘텐츠 영역이 서로 연결되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주 원도심을 창조성과 혁신이 살아 숨 쉬는 동네로 만들기 위해 전주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 프로그램은 외부의 크리에이터와 스타트업들을 전주로 초대해, 지역과 사람, 콘텐츠를 새롭게 연결하고 창의적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전주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는 전주 외부의 창의적 경계인인 크리에이터와 스타트업들이 9박 10일간 전주에 머물며 기존의 경계를 넘어서 이동하고 연결되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전주의 '관계인'이 되어 스스로 성장하고, 지역의 창의적인 사람들과도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한다. 전주의 원도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며, 창조성을 공유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제시했다:

  • Discover : 전주의 콘텐츠를 발견하고 창의적인 영역을 확장하세요.
  • Connect : 전주의 창의적인 사람들과 연결하고 영감을 나누세요.
  • Feel : 커뮤니티를 느끼고, 전주가 당신의 일부가 되도록 하세요.
  • Share : 이 경험을 주변 사람들과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며 새로운 지평을 여세요.

9월 레지던시는 추석 연휴가 끝난 목요일에 시작되었다. 첫날에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하고, 각 참가자가 자신의 참여 동기를 네 가지 키워드인 Discover, Connect, Feel, Share로 나누어 소개했다. 저녁에는 전주의 핵심 거리 중 하나인 웨딩거리에서 밍글링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지역의 창업자 및 상인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프로그램은 다양한 창의적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크립톤 양경준 대표가 지역 창업자들과 창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커피챗'을 진행하거나, 크립톤의 Stephane Mot, 모혜연 파트너가 호스트한 커뮤니티 시네마 '미드나잇 인 전주'에 참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지역과 외부 크리에이터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다. 또한, 전주 원도심의 골목과 장소를 다니며 창업자들과 '우연히' 만나게 설계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연결이 일어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창의적인 사람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했다. 필수 참여 프로그램을 최소화하고 아침마다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모닝커피' 시간을 두었는데, 이 모닝커피 시간은 개성 있는 지역 카페에서 진행되며 지역 사람들을 자연스레 초대할 수 있는 시간으로서,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동네와 사람, 콘텐츠와 연결되는 살롱 문화의 실현이다. 즉, 각자 자신의 일과 삶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낯설고 새로운 자극과 연결이 섞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표]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1기 일정표

[그림]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1기 주요 장소

[사진]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1기 스케치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1기가 만들어낸 새로운 연결

9일째 오후에 진행된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공유회는 참가자 필수 참여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이 공유회는 각자가 발견하고 연결하며 배운 것을 나누는 자리로, 함께 성장하고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 자리에는 전주의 창업자와 크리에이터들도 참여하여 서로 배움과 영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1기 공유회에서 참가자들은 전주에서의 경험과 변화를 나누었다. 열혈강호 IP로 게임을 개발 중인 신지게임즈의 염조연 PD는 어린 시절 전주 골목길에서 느꼈던 추억을 되새기며 이번 레지던시 기간에 발견한 전통 콘텐츠들이 큰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한옥마을에서 만난 장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이를 게임 스토리와 디자인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염 PD는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전통 문화의 깊이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게임 세계관을 풍부하게 만들 기회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신지게임즈의 이택진 PM은 전주 첫 방문이었으며,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신선했다고 전했다. 첫날 방문한 웨딩거리에서 빈 건물이 많은 골목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나, 전주에서 창의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크리에이터들을 만나며 전주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원도심과 한옥마을 상권이 단절된 점을 지적하며, 시민들의 창의성을 뒷받침할 중장기적인 정책이 부족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전해리 작가는 세계의 분쟁 지역을 다니며 디아스포라를 다룬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을 제작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이번 레지던시에서 전주를 재발견했다고 말했다. 미국에 살 때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전주를 가보기를 추천했지만, 서울에 거주하며 전주에 자주 와 보니 한옥마을의 획일적인 모습에 실망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레지던시 동안 전주의 사람들과 콘텐츠에 깊이 연결되면서 전주에 대한 인식이 다시금 달라졌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사람과의 연결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그 가치를 체험했다고 전했다. 

정필승 대표는 제주에 거주하면서도 서울 세운상가에 '필승사'라는 연구와 소통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과거 전주 한옥마을로 여행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 레지던시를 통해 전주에 대해 전혀 다른 인식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며 서로 연결된다는 점이 창의적인 자극을 주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전주 원도심에서의 경험을 SNS에 공유했고, 잠시 서울에 다녀왔을 때 지인들이 전주에 대해 궁금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주는 지역민과 이주민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무명씨네 이하늘 대표도 공감하며, 전북과 전주의 부모들이 자녀의 일을 크게 간섭하지 않는 편이라 청년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 된다고 말했다.

강주리 작가는 미국계 한국인으로 세계적인 펜슬 드로잉 아티스트다. 그녀에게 전주는 지나가다 잠깐 들른 적이 전부였다. 이번 레지던시를 통해 전주 한지와 지공예(부채) 등 전통 문화 콘텐츠와 장인들을 알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빈 건물 사이로 새로 생겨나는 가게들이 흥미로웠고, 한옥마을을 재발견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역 장인들과 소금공방의 박수지 작가 등과 연결되면서 더 머물며 앞으로 더 탐색하고 협업을 모색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이 전주에서 창의적인 자극을 받고, 지역과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공유했다.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전주의 전통과 현대적 요소를 융합하여 창의적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으며, 전주에서의 경험이 이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전주의 원도심을 크리에이티브 타운으로 만들어가는 방법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도시의 창조성과 개인의 창조성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전주의 원도심에서 지역, 사람, 콘텐츠가 기존의 경계를 넘어서 연결되고 창조성을 발휘할 때, 지역민과 외지인들은 '우연히 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위해 전주 원도심과 연결되지 않았던 다양한 창의적인 글로컬 경계인들을 초대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다.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 공유회에 지역 창업가들이 함께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공유회에는 무명씨네 이하늘 대표, AZMT(이들이 스테이한 라이프스타일 호텔 시화연풍 어라이브를 만든 스타트업)의 신혜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태조궁 김지환 대표, 무형문화재를 크리에이터 비지니스로 연결하며 글로컬상권창출 사업 장인학교를 운영하는 파트너인 프롬히어 설지희 대표 등이 참여하며 주관사 크립톤의 임직원들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자리이기도 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도시는 '우연히 운 좋은 연결이 일어나는 도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창조성이 싹트고 확산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연결이 일어나면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20년 이상 걸쳐서 도시와 개인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전 세계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주에 머물고 살아가고자 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를 만들어간다.

분류 STORY
전정환 2024년 10월 6일
이 게시물 공유하기
태그
우리의 블로그
보관
[프롬히어] 로컬브랜딩랩 1주차 : 오리엔테이션